그게 아마 1987년 가을 무렵으로 기억된다. 6월 민주화 항쟁과 7,8월 노동자 대투쟁의 성난 파도가 지나고 마침내 부활한 대통령 직선제를 향해 세간의 관심이 서서히 옮겨가던 바로 그해 가을이 틀림없다. 운동권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 콘서트 소식이 대학가에 들려왔다. 마침내 세상이 바뀌었음을 피부로 느낀 건 그게 아마 처음이었던 것 같다. 집회 현장에서나 보던 운동권 노래패 공연에 돈까지 내고 티켓을 사면서 말이다. 그때 무대엔 몇 곡이 노래가 흐른 후, 한 사내가 홀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빈 손 가득히 움켜쥔 햇살에 살아~”라며 <녹두꽃>을 불렀다, 자그마한 그의 체구를 보며 그땐 내내 녹두장군 전봉준을 떠올렸다. 김광석과의 첫 만남은 아무튼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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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어이없게도 노태우의 보통사람들 시대가 시작됐다. 그 해 데뷔한 보통이 넘는 밴드 ‘동물원’의 <거리에서>를 가로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는 스산한 거리에서 미니 카세트로 꽤나 많이 들었건만, 정작 이 노래의 주인공이 바로 그 사내였음을 안 것은 한참이 지나서였다. 쩌렁쩌렁한 울림의 녹두장군이 보통사람들 시대에 처연한 목소리의 가객이 되어 나타날 줄은 그땐 정말 몰랐었다. 이후 그의 노래를 따라 부르려 한물 간 통기타를 몇 번 만지작거려 봤고, 여자 친구와 그의 소극장 콘서트에 한 번 정도 다녀왔고, 그렇게 김광석이란 이름 석 자는 들국화, 김현식, 푸른하늘과 함께 당시 좋아하는 가수들 목록에 들어왔다. 그러다 터무니없는 3당 합당과 함께 90년대가 시작됐고, 느닷없이 서태지와 듀스가 등장했고, 그러면서 김광석의 노래를 찾는 시간도 점점 줄어갔다. 김광석과의 두 번째 만남은 대략 이런 시간들로 채워졌다.

물론 그 사이에도 그의 노래에 관심을 주던 때가 가끔은 있었다. 늘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또 하루 멀어져가는 시간이 안타까워지던 서른 즈음 무렵에 하필이면 <서른 즈음에>란 노래를 때맞춰 발표해준 그가 잠시 고마웠었다. 예기치 못한 자살 소식에 모처럼 그의 노래를 꺼내 들으며 또 잠시 애도의 시간을 가졌지만, 이듬해 S.E.S와 핑클이 잇달아 등장했고, 춤추는 요정들은 너무나 예뻤고, 때마침 간절했던 정권교체까지 이뤄져 요정들의 노래는 더욱 신바람 났고, 그러다보니 김광석은 내 기억 속에 사라져가고,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 갔다.

오랜만에 김광석을 다시 만난 건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였다. 남북정상회담으로 한반도엔 화해 무드가 조성됐건만, 영화 속에선 여전히 분단의 긴장감이 팽배한 와중에, <이등병의 편지>를 듣던 송강호가 담배 연기 길게 내뿜으며 “근데 광석이는 왜 그렇게 일찍 죽었다니?”라고 읊조릴 때, 예전엔 귀로만 듣던 그의 노래가 이제 다시 시작이라며 처음 가슴으로 들어왔다.

새삼 그의 예전 노래들을 찾아 들으려니 그새 카세트테이프는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mp3 플레이어를 폼나게 목에 걸고 다니며 새로운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알렸다. 그때 나는 그 자그맣고 값비싼 첨단 문물을 영접할 형편도 못될 만큼 가난했고, 그래서 빈 CD에 열심히 노래를 구워 컴퓨터에 연결된 자그맣고 값싼 스피커를 통해서라도 김광석을 가슴으로 들으려고 꽤나 노력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땐 암울했던 80년대로 부치지 못한 아날로그 편지를 21세기 새천년의 흐린 가을 하늘 한 구석에라도 불현듯 쓰고 싶었던 그런 시간이 있었고,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가는 것 같아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문득 떠나고 싶어지던 그런 시간도 겪었다.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그의 노래가 애달픈 양식이던 바로 그런 시절이었다. 이렇게 제대로 김광석의 열혈 마니아가 된 것은 그가 이 세상을 떠나고도 꽤나 한참 시간이 지나서였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다.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서른 즈음에> 노랫말보다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오는 요즘도 김광석은 가끔씩 불쑥 나타나 청춘의 그 시절로 나를 이끈다. 미처 스무 살도 되지 않았던 국민 여동생 아이유와 가당치않게도 <서른 즈음에>를 함께 부른 어느 이동통신사 광고에서 김광석은 그랬다. 하필이면 자신의 첫 솔로 음반이 나온 바로 그 해에 갓 태어난 정준영이, 심지어 그보다도 4살이나 더 어린 로이킴과 함께 슈퍼스타K 무대에서, 그것도 하필이면 자신이 세상을 뜨던 바로 그 해에 발표된 <먼지가 되어>를 작은 가슴 모두 모두어 열창할 때도 역시 그랬다.

경상도 사나이 삼천포와 전라도 아가씨 윤진이가 데이트하러 간 <응답하라 1994>의 콘서트장에도 김광석은 불쑥 나타나 비록 삼풍백화점은 무너졌지만 그래도 아직 젊음은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텨주던 나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무명의 모창 가수들과 베일 뒤에 숨어 노래 실력을 겨루던 <히든 싱어>에서도 김광석은 디지털 음원으로 복원된 여전한 목소리로 또 반갑게 불쑥 나타나 mp3 플레이어 대신 빈 CD에 노래를 굽던 그 시절을 돌아보게 해줬다. 쟁쟁한 실력파 후배 뮤지션들이 재해석한 수많은 <불후의 명곡>을 통해서도 김광석은 때론 그리움에 눈물도 흐르게 하고 때론 외로움에 가슴도 저리게 했던 노래를 한 가득 안겨줬다.

김광석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들이 공연된다기에 제일 큰 무대에서 공연하는 뮤지컬을 골라 관람했다. 김광석의 그 시절이 배경이었고, 김광석의 주옥같은 노래들이 변주되어 계속 이어졌지만 유감스럽게도 김광석을 느낄 순 없었다. 주인공을 맡은 한류스타 출신의 청년이 동방신기에서 탈퇴한 멤버인지 잔류한 멤버인지는 여전히 헷갈리지만 어쨌거나 김광석의 정서는 재현하지 못했다. 김광석의 노랫말에 갇혀버린 하나의 스토리만으로 각자가 품은 김광석을 느끼기엔 그 큰 무대가 너무나 좁았던 탓이다.

우리 세대에게 김광석이 여전히 좋은 건 누구나 그의 노래에 얽힌 청춘의 추억 한 두 개쯤은 갖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그가 불쑥 나타날 때면 저마다 어설펐지만 찬란했던 옛 청춘의 기억 속으로 젖어든다. 20년이 넘은 지금도 김광석이 여전히 사랑받는 건 누구나 자신의 처지에서 공감과 위로를 찾을 수 있는 노래 때문이리라. 취업에 실패한 이제는 아들뻘 되는 젊은이들에게, 삶의 무게가 버거워지기 시작한 동년배 중년들에게, 그리고 검은 밤의 가운데서 한치 앞도 보이질 않아 어디로 가야하나 둘러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는 특유의 씩 웃는 얼굴로 일어나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라며 노래들 들려준다. 그래서 너무 일찍 가버린 바람에 미처 세상에 들려주지 못한 그의 다른 노래들이 더욱 그립다.

(시사IN, 2014.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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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이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공개된 국정원의 트위터 게시글 내용은 이 사건의 추잡한 속내를 그대로 보여준다. 일국의 엘리트 정보 요원들이 썼다고 하기에는 너무나 조잡하고 민망한 일베 수준의 쓰레기 글이다. 국정원이 가져다 쓰는 세금이 아까울 지경이다. 따지고 보면 이 사건의 본질은 명료하다. 정보기관의 대선 개입이다. 따라서 지난 대선은 명백한 부정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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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국정원 게시글이 대선 결과에 무슨 큰 영향을 미쳤겠느냐고? 정몽준 의원의 “논란이 되고 있는 댓글이나 트위터는 한강에 물 한바가지 붓는 격”이란 발언이 대표적이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제가 댓글 때문에 당선됐다는 건가요?”라고 했단다. 대통령부터가 이 사건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정확히 짚어보자. 국정원 게시글의 대선 영향력 유무는 이 사건의 본질과 아무 상관없다. 핵심은 국정원이 인터넷에서 대선 개입 작전을 펼쳤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것이 성공한 작전이든 실패한 작전이든 정보기관이 대선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국정원 게시글의 대선 영향력 여부로 이 사안을 접근하는 것은 물타기를 위한 왜곡된 프레임일 뿐이다.

국정원은 대선 개입이 아니라 대북 심리전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궤변이다. 국정원이 정작 인터넷에서 해야 할 일은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 움직임을 포착해 수사하는 것이다. 이런 저질 게시글 따위나 올리고 앉아 있을 일이 아니다. 더욱이 야권 대선 후보들을 겨냥해 추잡한 인신공격성 글을 올리는 것이 대북 심리전과 무슨 관련이 있다는 것인지 국정원 스스로도 여태 아무런 논리적인 설명을 못하고 있지 않은가? 국정원은 또 일부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게시글을 올린 것일뿐 조직적인 개입은 아니라는 반박도 했다. 소가 웃을 일이다. 무엇보다도 앞의 주장과 모순된다. 그러니까 종합해보면 대북 심리전을 조직적으로 하지 않고 일부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수행했다는 소리가 되는데, 설령 이게 사실이라면 대선 개입 못지않게 위험천만한 일 아닐까?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일이니 박근혜 정부와는 관련이 없다는 말도 청와대에서 나왔다. 국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도저히 믿고 싶지 않은 궁색한 변명이다. 이런 논리를 수용한다면 만약 일본 정부가 “과거 강제종군위안부 문제는 예전 정부 때의 일이니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이것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더욱이 박근혜 정부는 정권 교체가 아닌 정권 연장의 산물이다. 이렇게 슬그머니 발 빼면서 책임을 전가한다고 간단히 끝날 사안이 결코 아니다.

지금껏 국가기관이 인터넷에 개입했던 사례는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었다. 주로 민주화가 미성숙한 나라일수록 국가기관의 인터넷 개입이 빈번하게 일어나곤 한다. 하지만 시민들의 입을 막고 온라인 여론을 강제적으로 규제했던 외국 사례와 달리, 이번 국정원의 대선 개입은 국가기관이 악성 게시글로 인터넷 공간을 오염시키고 여론을 조작했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인터넷 민주주의가 가장 활발했던 나라로 세계적 주목을 받았던 한국이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인터넷 통제국가의 오명을 쓰더니, 이제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서는 인터넷 통제의 새로운 차원마저 창조했다. 부끄럽고 참담한 일이다.

돌이켜보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온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여당은 오래전부터 온라인 여론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10만 사이버 전사 양병설’이니 ‘SNS 명망가 영입’이니 하며 갖가지 방안을 분주히 내놓았다. 모두가 온라인 참여보다 온라인 동원에, 온라인 소통보다는 온라인 장악에 초점을 맞춘 방안뿐이었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온라인 동원과 가장 압도적인 온라인 장악이 결국 정보기관의 손에 의해 수행된 것이다. 이것이 부정선거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여성신문, 2012.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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