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과 촛불의 386 주니어
글/디지털타임즈
2008년 05월 20일 10시 47분
10대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광우병 파동에 분노하며 거리로 뛰쳐나온 사람들의 주력이 중고생이다. 준비해 온 피켓에 적힌 문구도 청소년답게 재기발랄하다. “너나 먹어 미친 소”, “MB여, 제발 초심을 잃어주세요”. 거리낌 없이 대중들 앞에 나가 즉석연설까지 거뜬히 소화해내는 10대들의 느닷없는 출현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놀라운 현상이다. 탈정치화, 보수화되어 있는 20대들과도 확연히 대비되는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들이 누구이던가? 바로 ‘386 주니어’들이다. 암울했던 80년대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자며 청계 고가도로 위에서 유인물을 뿌려대던 386 세대의 2세들이 벌써 이렇게 성장해 다시 청계천에 모여든 것이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하나 있다. 부모 세대가 돌과 화염병을 손에 들었다면, 386 주니어들의 손에는 핸드폰과 촛불이 쥐어져 있다.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무기로 무장하고, 촛불이 상징하는 새로운 감수성을 체득한 386 주니어들의 거침없는 반란이 진행 중이다.
어떤 이들은 368 주니어들을 가리켜 “아직 뭘 모르는 어린아이들”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정말 뭘 잘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다. 386 주니어들이야말로 다른 어느 세대보다도 인터넷을 통한 빠른 정보 습득과 폭넓은 온라인 네트워크를 형성한 세대임을 모르는 것이다. 또 일부 언론은 10대들의 반란에 배후가 있다고 말한다. 이런 이야기야말로 언론이 이름붙인 이른바 ‘인터넷 괴담’이란 것보다 훨씬 더 악의적이고 터무니없는 괴담이다. 자유로운 감성을 발산하는 386 주니어들을 보이지 않는 배후의 손에 조종되는 꼭두각시 따위로 폄하하기 때문이다.
과연 무엇이 이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나? 일단 학교 급식을 통한 광우병 감염 위험이라는 위기감이 가장 직접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단지 이것 하나 때문만은 아니다. 영어몰입교육, 0교시 수업, 우열반 편성 등 정신없이 쏟아져 나온 이명박 정부의 중고생 대상 정책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광우병 파동을 계기로 임계점을 넘어 폭발해 버린 결과이다. 더욱이 이들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은 세대이다. 현 정부의 출범에 아무런 연대 책임도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비판하고 거침없이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세대인 것이다. 386세대인 부모가 끼친 직간접적 영향도 분명 컸을 것으로 보인다. 비판정신과 현실참여 의식이 가장 높은 세대였던 부모들의 사회적 유전자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이들에게 이식된 것으로 보인다. 2002년 광화문 촛불시위 당시 386 부모들의 손을 잡고 거리에 나왔던 어린 아이들이 지금의 386 주니어들이니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가장 중요한 요인이 하나 더 있다. 바로 386 주니어들이 공유하고 있는 역사적 경험 세계이다. 386 주니어들은 현 정부와 여당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했던 민주화 운동 세력의 집권 시기에 아동기와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이다. 그들의 경험 세계 속에는 이 10년의 세월만이 자리 잡고 있다. 기성세대들은 이명박 정부가 과거 권위주의 시절로 회귀하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하지만, 386 주니어들의 의식 속에는 권위주의 시절이란 것 자체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정부가 국민 대다수의 의사에 반하여 자기 멋대로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지금 같은 방식이란 지금껏 본 적도 배운 적도 없는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그들의 경험 속에서 대통령이란 결코 신성불가침의 지위가 아니다. 때론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언론과 여론으로부터 대통령이 비판받고 조롱당하는 모습을 지켜본 세대들이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고 대통령을 비난했다고 해서 경찰 수사까지 진행되는 상황 역시 이들로서는 도무지 받아들여지기 힘든 일이다. 부모세대의 희생과 노력으로 이룩한 민주화의 성과야말로 지금의 386 주니어를 만든 밑거름이다. 그리고 그들이 익숙해져 있는 경험세계와는 판이하게 변해버린 지금의 상황이야말로 이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든 진정한 배후이다.
(디지털타임즈, 2008.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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