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마스 트리처럼 점멸하는 민주주의
글/시사IN
2008년 06월 12일 09시 12분
청와대로 향한 촛불시위 행렬이 경찰의 물대포에 막혀 진퇴를 거듭한 지 며칠 후, 한 블로그에 흥미로운 글이 올라왔다. 광화문 일대를 찍은 구글 어스 위성사진에 경찰 병력 배치 지점과 이동 경로를 표시하고, 촛불시위 행렬이 이를 피해 효과적으로 청와대까지 다다를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한 글이다. 경찰은 20년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무전기로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데, 네티즌들은 위성사진을 활용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경찰과 네티즌의 디지털 격차가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지금의 촛불시위 행렬이 특정 지도부의 지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얼마나 실현 가능성이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하지만 휴대전화와 디지털 카메라에 이어 구글 어스까지 동원될 정도니 이번 촛불시위는 다른 말로 디지털 시위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지난 2002년과 2004년의 촛불시위와 비교해 봐도 시민들의 디지털 매체 활용도는 놀라운 수준으로 진화했다. 당시 디지털 매체의 역할이란 촛불시위 일정을 전파하고, 인터넷 현장 생중계를 보면서 댓글을 달거나 시사 패러디를 만들어 올리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이에 비해 이번 촛불시위 과정에서 디지털 매체의 활용은 훨씬 다각화, 고도화 되고 있다. 시민들의 행동 방식도 어떤 디지털 매체를 어떻게 활용하는가에 따라 여러 유형으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 유형은 ‘참가자’이다. 청계광장에 촛불을 들고 나가 가두행진을 벌이는 직접적인 행위자들이다. 현장에서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다른 참가자들과 긴밀한 소통을 나누고, 집회에 참석하지 않은 가족과 친구들에게 현장 상황을 알리고 참가를 독려한다. 과거 촛불시위에서도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유형의 사람들이다.
두 번째 유형은 ‘기록자’이다. 이들은 집회 참가자들의 주변부에 포진하여 생생한 현장의 모습을 디지털 카메라와 캠코더로 찍어 인터넷에 올린다. 웹캠이 장착된 노트북을 들고 <아프리카> 사이트를 통해 집회 장면을 생중계하기도 한다. 가두 행진이 진행되면 대열의 선두로 나가 마주하고 있는 경찰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집회 참가자들의 얼굴을 채증하는 경찰을 역채증하고, 경찰이 시민을 폭행하는 장면이 포착되면 재빨리 카메라 렌즈를 들이댄다. 그러다보니 이런 구호도 등장했다. “때릴 때 조심해라, 찍히면 인터넷 스타.” 촛불 시위에 대한 보수 언론들의 악의적 보도가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는 데에는 이들 시민 저널리스트들의 공헌이 크다.
세 번째 유형은 ‘분석자’이다. 기록자들이 인터넷에 올려놓은 사진과 동영상을 판독하여 폭행 경찰의 소속과 신분을 추적해 내는 놀라운 수사력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다. 또 집회 참가 때 챙겨야 할 물품들을 꼼꼼히 챙겨 인터넷에 게시하고, 경찰에 연행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좋은지를 정리해 알려주기도 한다. 앞서 소개한 구글 어스 위성사진을 올린 블로거 역시 분석자의 범주에 해당하는 사람이라 하겠다.
네 번째 유형은 ‘전파자’이다. 이들은 주로 블로그와 게시판을 무대로 집회 참가 후기를 적거나 정부와 경찰의 태도를 규탄하는 글을 써 올린다. 어디선가 새로운 소식이 들려오면 이를 인터넷 곳곳에 부지런히 퍼 나르기도 한다. 광우병이나 촛불시위에 대해 다른 의견을 밝히는 사람과 치열한 온라인 토론을 벌이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인터넷상의 의제 설정과 여론 조성을 주도하는 빅 마우스들이다.
물론 이 네 가지 유형에 속하는 사람들이 엄밀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현장의 참가자가 카메라폰을 꺼내 기록자가 되기도 하고, 다시 집에 돌아와서는 분석자나 전파자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역할이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인들이 상황에 따라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유연하게 행동하면서 하나의 큰 흐름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번 촛불시위를 디지털 시위라 부를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동안 인터넷 공간에 형성되어 왔던 온라인 문화의 특성이 오프라인 집회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조직적 지도부도 없고 사전에 기획된 프로그램도 없는 촛불시위지만 그 안에서 무수한 내러티브(서사구조)들이 만들어진다. 이는 웹2.0의 기본 명제인 “플랫폼으로서의 웹”을 연상시킨다. “플랫폼으로서의 웹”이란 누구나 자유롭게 오가며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서의 웹 환경을 의미한다. 위키피디아의 사례에서 보듯 플랫폼으로서의 웹을 통해 수많은 이용자들이 다양한 콘텐츠들을 만들어 내고, 이것들이 모여 거대한 집단지성을 형성한다는 원리이다. 촛불시위 현장에는 연일 다양한 사람들이 끝없이 자유발언을 쏟아내고, 재기발랄한 문구의 피켓과 즉흥적인 구호가 광장 가득히 흘러넘친다. 여기에 촛불소녀, 예비군 오빠, 유모차 부대가 차례로 주인공으로 등장해 계속 새로운 내러티브를 생산한다. “플랫폼으로서의 웹”이 오프라인 광장에서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웹2.0의 철학이라 할 수 있는 참여, 자율, 개방, 공유 등의 키워드는 동시에 민주적 가치의 핵심 키워드이기도 하다. 지금의 디지털 환경이 민주적 가치를 확장시키는데 매우 유리한 방향으로 형성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실체가 촛불시위 현장에서 확인되고 있다.
한편 가두시위 행렬의 움직임은 인터넷의 하이퍼링크적 흐름과 아주 많이 닮아 있다. 막히면 돌아가고, 또 막히면 즉석에서 다시 방향을 바꾸고, 그래도 또 막히면 몇 갈래로 흩어졌다 어느 사이 다시 모여드는 시위대의 예측 불가능한 행보는 선형적 행진에만 익숙해져 있던 경찰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동안 시위라면 이력이 난 운동권 선수들조차 단 한 번도 돌파하지 못했던 광화문 철벽 저지선이 아마추어 시위대의 하이퍼링크적 흐름에 의해 한 순간에 무력화된 순간이다.
놀이와 저항의 화학적 결합 역시 온라인 문화로부터 비롯된 현상이다. 즉석 길거리 공연과 함께 촛불 축제가 펼쳐지고, 다정한 연인들이 촛불 데이트를 즐기는가 하면,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끼리 촛불 동창회가 열리기도 한다. 극한 상황이 닥치면 네티즌 특유의 유머 감각이 한층 빛을 발한다. 마이크 들고 진압 작전을 예고하는 경찰서장에게 “노래해”를 외치고, 물대포를 퍼붓는 살수차를 향해서는 “때수건”과 “온수”를 주문한다. 거리를 가로막은 경찰버스에 불법주차 스티커 붙이고, 경찰에 포위되면 제 발로 경찰버스에 들어가 기념사진을 찍으며 ‘닭장차 투어’를 즐기는 역발상, 그리고 가두행진이 도로교통법 위반이라니까 횡단보도 건너면서 신호등 촛불시위를 벌이는 재기발랄함은 예전 시위현장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던 모습이다. 엄숙함과 진지함이 무겁게 짓누르던 80년대식 시위문화 대신 감성과 재미를 추구하는 유쾌, 상쾌, 통쾌한 네티즌 정서가 새로운 시위문화를 창출해 내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인 변화는 시민참여 패러다임의 대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전통적인 시민참여 방식은 가로등 모델에 비유할 수 있다. 붙박이로 서 있는 가로등이 밤새 어둠을 밝히듯 정당이나 시민단체, 이익단체 등 상시적 조직체가 시민참여의 중심이 되는 형태였다. 반면 지금 광화문과 인터넷 공간을 횡단하며 전개되고 있는 시민참여 방식은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는 점멸등 모델이라 하겠다. 점멸등을 구성하는 개개의 불빛은 비록 미약하기 짝이 없으며, 끊임없이 켜짐과 꺼짐을 반복하는 불안정한 존재이다. 그러나 이런 점멸등 하나하나가 네트워크로 연결되자 다른 어떤 불빛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크리스마스 트리를 밝혀준다. 이것이 바로 온라인 네트워크의 위력이다. 작은 점멸등들이 온라인 네트워크로 정보를 교환하고 의견을 나누며 힘을 모아 행동으로 나간다. 그래서 지금 오프라인 광장을 수놓고 있는 저 많은 촛불들은 점멸등 모델이라는 새로운 디지털 시민참여에 대한 아날로그적 메타포이기도 하다.
(시사IN 제39호, 200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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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촛불시위 보면서 형이 논문에서 언급한 점멸등 모델을 이제야 제대로 목격하게 되는구나 생각했어요. 게다가 메타포로서 '점멸등'이 실제 '촛불'로 형상화될 줄이야... 내년 쯤엔 이번 시위 주제 삼은 논문들이 또 한번 봇물처럼 쏟아지겠지요만은 구체성의 차이는 있을 망정, 집합행동의 가장 최근 버전인 이번 촛불시위의 양태규정은 형 논문에서 이미 끝낸 얘기라고 보입니다. 다시 한번 날카로운 예지력에 경의를.. ^^
라묜의 날카로운 예지력이 빛나는 논문도 빨리 볼수 있기를...^^
촛불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지 말기를...
결국 촛불은 하나둘 꺼질 것이고 이후 몰려올 아날로그식 대반격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지 않을지
하여튼 반갑군 (나를 기억한다면)
그럼 또 언제든 다시 켤 수 있음을 지금 확인하고 있지 않나요?
그런데 뉘신지 가물가물....
촛불은 언제든 다시 켜지는게 아니라 여러가지 조건이 맞아야지. 87년 이후로 21년만에 광화문을 채웠듯이 쉽게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는게 아닐 것으로 생각해.
나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일회성(좀 충격적이기는 하지만)으로 보고 있으며 이후 닥쳐올 반격은 언론, 자본, 공권력이 총동원된 무시무시한 것이 될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역시 당하는 자들은 밑에서부터겠지.
(참 나는 고교동창이야. 기억할 지 모르겠지만)
촛불은 2002년 이후 벌써 3번째로 광화문을 채웠지.
언제든 또 다시 켤수 있는거라네.
그리고 물대포 맞고 경찰 방패에 얼굴을 찍히는 모습을 봤으면서도 또 촛불시위에 나가는 사람들을 단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일회성 행동이라고 치부하는 것은 조중동보다도 한 수 위의 발상이로군.
만약 촛불 민심에 대한 반격이 있다면, 촛불은 횃불로 바뀌게 될 것일세.
기억이 떠올랐네...고교동창~
보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견고하네
그들은 각개격파 방식으로 대응할 것이며 이미 반격은 시작되었네. 전선을 다양화하면 할수록 누가 유리하겠나. 촛불이 이 모든 어려움을 뚫고 앞을 향해 전진하리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네. 지난 총선에서 뉴타운광풍으로 서울을 싹쓸이 한 원인은 지정되기만 하면 1인당 350만원씩 준다는 사상최대의 금권선거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이것이 잘 되지 않자 실망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아닌가? 나를 포함해 이런 정도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우리가 어떻게 이번 촛불을 직접민주주의라 할 수 있겠나?
물론 이번 촛불이 한국 현대사에 강한 임팩트는 주었을 지 모르나 더이상의 창조적 진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네. 참 내가 언급한 스트레스는 0교시, 사교육, 생활고 등으로 팽배한 불만이 마침 촛불로 인해 점화된 것이라 생각하며 한낱 유희나 광기를 표현한 것은 아니었네.
(기억이 났다니 반갑네. 매체를 통해 접하고 무척 반가웠네.
촘스키라는 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더군.
"당신이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당신은 정말 변화가 없는 현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회적 사건이 휩쓸고 간 후에는 반드시 그 결과로서 이익보는 자와 손해보는 자가 있게 마련이네. 지금 이 국면에서 이익을 취하는 자들은 자네같은 먹물이나 지리멸렬하던 이런저런 진보단체일세.
우리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보아야 하네.
청계천의 어린 학생들의 이대로는 못살겠다는 처절한 절규와 외침을.
지금 그 아이들은 어디에 있나?
아이들이 있던 자리는 이름도 생경한 각종 단체들이 깃발을 앞세우고 차지하고 있지 않나?
나는 퇴근길에 가끔 시청앞 광장에 들러 점점 소외되어 자리를 찾기조차 힘든 아이들의 파리한 얼굴을 참담한 심정으로 보곤 한다네.
제발 좀 살려달라는 아이들의 처절한 절규를 '대의'라는 이름으로 뭉개며 이익단체의 주장만이 난무한 이 현실에 부끄러움을 느끼네.
지금 우리는 수치심을 느껴야 하네.
미국의 목장에서 기계적으로 사육되는 소나 닭처럼 사육되는 아이들을 위한 진지한 토론과 성찰과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하네.
아이들에게 촛불을 양보하고 발언권을 양보해야 하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광장을 떠날 것이고 넥타이와 유모차는 눈씻고 찾아봐도 없게 될 것이네.
똑같을걸 보고도 이렇게 관점에 따라 해석이 다를수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드네. 나는 지금 광화문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밀어낸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합세한 것이라고 보네. 아이들 역시 여전히 그 자리에 서있지. 게다가 처음엔 부모 몰래, 선생님 몰래 나오던 아이들이 이제는 부모나 선생님과 함께 나오고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자네가 쭉 한 말을 종합해보면 보수진영의 무시무시한 반격에 대응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촛불을 양보해야 한다는 것 같은데, 이게 잘 납득이 안되는구만.
아마도 촛불시위가 정치운동으로 전환되는 것이 못마땅한 모양인데, 처음부터 광우병 이슈도 정치이슈였네. 아이들이 불을 지핀 생활정치 이슈이지. 그러니까 촛불의 이슈가 다른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하네.
그리고 나 같은 먹물이 지금 이익보고 있는거 하나도 없다네. 지금의 상황에서 시민대중과 먹물, 진보단체를 분리시키려는 것 역시 조중동스러운 태도 아니겠나?
어차피 먹물과 시민대중은 함께하기 어려운 법일세.
시민은 느낌으로 행동하고 먹물은 분석하지.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 촛불덕에 먹물들은 아마 앞으로 3~4년은 먹고 살수 있을 것이네.
먹물은 논문 또는 각종 언론의 시론등으로 우려먹고 또 우려먹을 것이네.
소설가는 틀림없이 동학농민혁명이나 4.19, 5.18, 6.10등과 연관지으며 장편을 넘어 대하소설로까지 우려먹을 것이네.
시인은 처음에는 찬양하다가 나중에는 비판하고 그러다가 종내에는 희망과 비관을 노래할 것이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지금의 촛불은 지리멸렬로 가고 있다는 것이네.
따라서 지금이라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네.
아이들에게 촛불과 발언권을 넘기라는 것은 반격에 대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만이 촛불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며 반격을 무력화 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이네. 이제 그것마저도 기대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많이 가버렸지만.
사실 반격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은 이렇네
그들의 반격에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계층을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가?
진중권이 보복당해 감옥에 가겠나? KBS사장이 바뀐다 한들 직원들이 밥그릇을 놓는 상황이 오겠나?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민변을 비롯해 여러 단체가 지원하고 준비하고 논리로 대응해야 하는데 지나간 역사를 보면 그렇지가 못했네. 단물만 빼먹고 도망치는 식자들이 그 얼마였으며 환멸의 시대를 살아야 했던 우리의 자괴감은 얼마나 컸던가.(자네도 알겠지만 지금 뉴라이트에 가담해 금뱃지를 단 자들중에 왕년에 민주투사 출신이 꽤 된다네. 임열사조차도 왕년에 운동권이었다고 하는군.)
보수의 반격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은 자네같은 먹물이나 또는 집단의 힘을 가진 단체가 아니겠나?
아이들은 비로소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그야말로 손바닥만한-찾았네.
그런데 순식간에 어른들에게 그 자리마저 뺏겨버렸다고 나는 생각하네.(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이네. 어차피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면을 보게 돼 있지 않은가?)
교복을 입은 어린 학생들은 후일 지금을 어떻게 기억할까?
이명박과 우리를 분리해서 기억할까? 나는 아닐 것이라고 단언하네.
진보나 이익단체가 아이들의 촛불에 업혀 다른 의제를 제기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라고 생각하네. 스스로 의제를 설정하고 이슈를 만들지 못하는 진보가 무슨 진보인가?
사실 나는 6월10일을 분기점으로 촛불을 내렸어야 했다고 생각하네. 그랬다면 보수는 대응상대를 찾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전열을 가다듬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네. 승리를 위해서는 공포를 심어주어야 하네. 하지만 우리는 6.10이후 가진 밑천을 다 드러냈을 뿐만 아니라 지리멸렬하기까지 하네. 우리가 촛불을 내리며 언제든 다시 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면 저들은 공황상태에 빠질 수도 있었을 것이네. 그렇지 못하고 밑천을 다 드러낸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질서 있는 패배밖에 없으며 이제는 그것조차도 어렵게 되었네. 왜냐하면 운동의 관성에 따라 흘러가다 보니 너무 멀리 가버렸기 때문이네.
빼앗으려는 자와 뺏기지 않으려는 자의 싸움에서 누가 이기겠나?
빼앗아봐야 불특정다수와 나누어야 하는 쪽과 확실한 내 것을 지키려는 쪽의 싸움은 치열함에 있어 그 결과가 너무나 뻔하지 않겠나.
그래서 보수는 무서운 것이며 지금까지 이겨온 것이네.
오늘 촛불을 든 사람들은 이명박을 당선시키고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에 압승을 안겨준 바로 그 사람들이네. 도대체 사람들이 몇 달전에 무식했다가 지금 갑자기 똑똑해지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보수는 아마 몇가지 개선사항을 던져주고 상황을 무마하려 할 것이네. 촛불을 든 기성세대는 기꺼이 귀가할 것이네. 자위행위와 전혀 다를바 없는 승리했다는 포만감을 안고.
물론 내가 좀 냉소적이기는 하지만 열정만으로 바뀔수 없는 사회구조를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이해해주게.
자네와 나는 어쨌든 386이네.
비록 서로 다른 곳에 있었지만 보고 있는 곳은 같았을 것이라 믿네.
지금 우리(나는 감히 ‘우리’라고 표현하네) 386은 자리를 비켜줘야 한다고 보네.
우리는 ‘잔치는 끝났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낡은 세대가 되어 버렸네.
시대가 우리에게 또한번 역사를 바꿀 기회를 주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되네. 87년은 추억으로밖에 남지 않았네. 시대를 앓았던 우리가 지금 이 시대를 앓고 있는 아이들에게 기꺼이 자리를 양보하고 그들을 둘러싼 튼튼한 벽이 되어 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지 않겠나?
(너무 길었나? 뭐 딱히 자네와 논쟁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 촛불을 든 자네를 생각하니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는군. 좀 웃길 것 같네. 난 동대문구에 직장이 있으니 언제 시간되면 만나서 촛불을 안주삼아 한잔하세)
댓글에 질식하겠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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