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리트 저널리즘의 진화
글/디지털타임즈
2008년 06월 18일 00시 43분
"때릴 때 조심해라, 찍히면 인터넷 스타."
촛불 시위대를 향한 경찰의 폭력 진압을 조롱하듯 누군가 경찰버스에 붙여놓은 문구이다. 실제로 촛불 시위 현장에서 시민 폭행 장면이 포착되면 어김없이 카메라 렌즈들이 모여들어 경찰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시위 가담자를 채증하려고 카메라를 꺼내든 경찰을 수십 개의 카메라가 다시 역채증하는 모습도 종종 벌어진다. 그래서 경찰 간부가 부하들을 모아놓고 “카메라 있는 곳에서는 노약자나 여성들을 폭행하지 말라”고 지시했더니, 그 장면마저 고스란히 동영상으로 찍혀 인터넷에 올라오고 말았다. “그럼 카메라 없는 곳에서는 마음대로 폭행해도 괜찮단 말이냐?”는 네티즌들의 항의가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시위 참여자가 카메라를 들고 미디어 역할까지 수행하고 있다. 촛불 시위를 계기로 거리의 시민기자, 이른바 스트리트 저널리즘의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스트리트 저널리즘은 2005년 런던 지하철 폭탄테러 당시 한 시민이 휴대폰 카메라로 사건 현장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 것이 효시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보다 앞선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사건을 통해 이미 스트리트 저널리즘이 위력을 발휘한 바 있다. 사건 다음날 전국 모든 조간신문의 1면을 장식한 것은 지하철에 탑승했던 한 승객이 참사 직전 자신의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사진이었다. 뽀얗게 연기가 스며드는 지하철 공간 안에서 승객들이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있는 이 장면은 사건 발생 이후에나 현장에 도착하는 사진기자들로서는 도저히 찍을 수 없는 생생한 사진이다. 스트리트 저널리즘의 강점이 바로 여기 있다. 속보성과 현장성이다.
그런데 이번 촛불 시위에서 스트리트 저널리즘은 속보성과 현장성 그 이상으로 진화하고 있다. 첫째, 전업형 스트리트 저널리즘의 등장이다. 기존의 스트리트 저널리즘에는 우연성이 크게 작용했다. 즉 우연히 사건 현장에 있던 시민에 의해 예기치 않던 보도가 이뤄지는 형태였다. 반면 촛불 시위의 스트리트 저널리즘은 작심하고 카메라를 들고 나온 시민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 행위를 통해 구현되고 있다. 아예 시민기자단 완장까지 차고 나와 시위현장 곳곳을 누비는 디지털 카메라 동호회까지 등장했으며, 캠코더와 노트북으로 인터넷 생중계를 하는 BJ(Broadcasting Jockey)들의 활약상도 눈부시다.
둘째, 대안 미디어로서의 역할이다. 촛불 시위 초기부터 배후론, 괴담론을 유포하며 편향보도에 나선 보수 언론들의 논조가 시민들에게 전혀 먹혀들지 않았던 데에는 이들 스트리트 저널리스트들의 역할이 컸다. 일단 수많은 거리의 기자들이 생산해 내는 기사와 정보들은 양적인 측면에서 기성 언론의 보도를 압도하고도 남았다. 뿐만 아니라 시위 참여자들의 생생한 모습과 목소리를 여과없이 전달하고, 언론사 기자들이 미처 포착하지 못한 장면까지 놓치지 않는 스트리트 저널리스트들을 기성 언론들은 뒤따라가기에 바빴다.
셋째, 온라인 스트리트 저널리즘의 등장이다. 스트리트 저널리스트들의 활동 공간이 오프라인 뿐 아니라 온라인 공간으로까지 확장됐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온라인 공간의 빅 마우스들은 주로 보도된 뉴스에 대한 사후 논평식 글쓰기에 머물러 왔다. 그런데 이번 촛불 시위에서는 온라인을 통한 취재 및 심층보도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인터넷에 올라온 사진과 동영상을 판독하여 폭행 경찰의 인적 사항을 알아내는 추적 보도가 대표적이다. 또한 구글 어스로 광화문 일대의 위성사진을 찍어 경찰 병력의 배치 지역과 이동 경로를 파악하여 보도하거나, 집회현장에 운집한 시민들을 공중에서 찍은 사진을 놓고 픽셀 측정 소프트웨어로 촛불 숫자를 산정해 참여 인원을 추정하는 등 기성 언론은 상상조차 못해본 온라인 활용 최첨단 취재보도까지 거뜬히 해치우고 있다. 이제 시민이 행동하면 이를 시민이 취재 보도하고 이를 통해 다시 시민들이 주체적으로 여론을 형성한다. 스트리트 저널리즘이 언론 환경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디지털타임즈, 2008.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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