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혹시 바퀴벌레가 마누라로 변해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누라가 바퀴벌레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요?

A. 바퀴벌레는 먹은 음식물을 다시 토해내고, 토한 물질이나 변을 다시 먹는 습성이 있습니다. 식사를 하면서 자주 토하지는 않습니까? 음…두 번째는 묻지 않겠습니다.

말도 안되는 황당무계한 질문이지만 재치있는 답변으로 받아 넘긴다. 거기에 바퀴벌레에 대한 전문 지식까지 곁들이면서. 인터넷 게시판 꽤나 돌아다녀본 사람이라면 출처가 어딘지 금방 알아챘으리라. 해충 방제회사 ‘세스코’의 O&A 게시판이다. 해충 방제 상담 게시판임에도 불구하고 웬만한 유머 사이트보다 더 재미있다고 네티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황당한 질문을 다는 네티즌은 점점 늘어났지만 게시판 혼탁을 걱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네티즌들 사이에 기업 이미지가 좋아져 매출 증대 효과까지 얻었다는 후문이다. 요즘은 엽기적 질문 뿐 아니라 인생 상담이나 시사 현안에 관한 질문도 올라온다. 운영자는 여전히 성의있게 답변한다. 게시판 운영만 잘 해도 수십억 원을 들인 광고보다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준 온라인 PR의 성공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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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게시판의 혼탁을 빌미로 다각적인 규제 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인터넷 규제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율규제를 대안으로 제시하지만, 자율규제가 공허한 이상론이 아니냐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런 반론을 펼치는 이들에게 세스코 게시판은 자율규제가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이다.

아마도 많은 기업 사이트에서는 말도 안되는 질문이 올라오면 악성 게시글로 간주하고 삭제할 것이다. 하지만 세스코 게시판 운영자는 삭제 대신 재미와 전문 지식을 곁들인 답변을 꼬박꼬박 달아 주었다. 이렇게 운영자가 조금만 신경 써도 얼마든지 자율적으로 건강한 게시판 문화를 조성할 수 있다.

자율규제가 모범적으로 이뤄지는 게시판은 많다. 디지털 카메라 커뮤니티 사이트 ‘SLR클럽’도 그 중 하나이다. 이곳 중고장터 게시판에는 한 가지 중요한 규칙이 적용된다. 팔려고 내놓은 카메라나 렌즈 가격에 대해 싸다 비싸다 하는 댓글은 일절 달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면 금방 다른 이용자들의 경고성 댓글이 올라온다. 운영자에 의해 회원 등급 점수도 깍인다. 너무 엄격하고 가혹한 규제라 느낄 수도 있지만 이런 규칙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용자는 한 명도 없다. 모두가 이 규칙을 준수하면서 가격시비 없는 평화로운 게시판 문화를 유지한다. 이용자의 합의에 따라 만든 규칙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율규제라는 것이 규제가 전혀 없는 무법천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있으나마나 한 물러터진 규제를 의미하는 것 역시 아니다. 규제의 내용이나 수위는 부차적 문제이다. 관건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규제를 만드는가이다. 정부가 획일적인 규칙을 일방적으로 만들어 강제 적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운영자와 이용자의 합의로 그 사이트의 목적과 성격에 맞는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적용하면 된다. 그리고 이 규칙에 동의하는 이용자들은 계속 그 사이트를 이용하고 그렇지 않은 이용자는 떠나면 그뿐이다. 이 얼마나 간단 명료하고 효율적인가?

이처럼 자율규제란 공허한 이상론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가장 현실적인 규제 원리이다. 법적 규제로만 게시판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악성 댓글은 법적인 문제이기 이전에 인터넷 문화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문화는 법으로 제정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세스코와 SLR 클럽 게시판이 잘 보여줬듯이 말이다.

(시사인 제59호, 200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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