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가서 영화 한편 보려면 일단 관객들이 일동 기립하여 애국가 한 곡을 먼저 들어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람보가 베트남에 들어가 총질을 해대는 영화도, 인디아나 존스가 독일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보물을 찾아오는 영화도 예외없이 대한민국 애국가를 들으며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상할 것을 정부가 강요했던 그런 시절이 있었다. 그게 1970~80년대니까 벌써 꽤 옛날 일이다.

음반도 마찬가지였다. 이 시절에 발매되는 모든 가요 음반에는 의무적으로 이른바 국민가요라는 것이 수록되어야 했다. 그 덕에 아마도 정수라가 부른 ‘아! 대한민국’이란 노래가 국내 음반 최다 수록곡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물론 공식 기록은 아니다). 당시 최고 인기 가수였던 이용이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며 부른 ‘서울’이란 노래가 그 뒤를 이었고,  혜은이와 홍삼트리오가 “믿음 속 상거래로 밝고 따뜻한 사회 만들자”고 부르짖은 ‘시장에 가면’이란 노래 그리고 해바라기의 이주호가 부른 ‘어허야 둥기둥기’ 같은 노래들이 이 시절 단골 수록곡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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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혜성같이 등장해 국내 가요계에 한 획을 그은 락 밴드 들국화의 1집 음반은 국민가요 측면에서도 또 다른 충격을 던져 주었다. 전인권이 특유의 샤우팅 창법으로 부른 동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은 정부가 강요한 국민가요 수록 정책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음악세계를 고수하려는 들국화의 저항 정신이 교묘하게 타협점을 찾은 산물이다. 그리고 우연의 일치일지는 몰라도 이런 국민가요 강제 수록 정책이 없어진 이후 한국의 가요 시장은 비로서 서태지, 김건모, 신승훈 등을 통해 음반 판매량 100만장 시대라는 황금기를 맞이하였다.

20~30년 전으로 역주행을 가속화하고 있는 MB 정부가 이번엔 대중가요 영역에서도 역주행 악셀을 밟을 모양이다. 청와대가 90주년 3.1절에 즈음하여 <힘내라! 대한민국>이란 제목의 나라사랑 랩송을 제작하기로 했단다. 인기그룹 ‘빅뱅’을 비롯한 여러 유명 가수들이 돌아가면서 부르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데, 마이클 잭슨을 비롯해 수십 명의 가수들이 함께 부른 노래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를 벤치마킹 한 것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지금까지 MB 정부가 보여줬던 대국민 코미디의 결정판이다. 일단 청와대가 느닷없이 음반기획사 역할을 하겠다고 나선 것부터가 코미디이다. 세계 최초의 음반기획사 정부라는 기상천외한 기록이 수립될 판이다.

이런 발상을 하게 된 취지도 코미디이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이 기획은 “미래의 주역인 10대~20대 젊은이들의 애국심을 고취시켜 나라에 대한 의미를 자연스레 되새길 수 있도록 하는 방안”으로 구상되었다고 한다. 요즘 신세대 젊은이들이 나라사랑 랩송 만들어주면 저절로 애국심이 모락모락 솟아날 것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지금이 새마을 운동 하던 시절도 아닌데 말이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정부가 노래 틀어준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어디까지나 자발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지당한 진리조차 모르고 있는걸 보니, 아마 청와대 안에는 젊어서 연애 한 번 제대로 해본 사람도 없는 게 아닌지 사뭇 궁금해진다.

가수들도 제발 가만히 좀 놔둬라. 요즘 가수들은 정부가 나서지 않아도 알아서 나라 사랑 활동 잘 하고 있다. 당장 이번 기획에 염두에 뒀다는 빅뱅만 해도 정규 2집 수록곡 ‘붉은노을’ 뮤직 비디오를 기름으로 얼룩진 태안에 가서 만들었다. 김장훈을 비롯한 기부 천사 가수들의 숫자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청와대가 미국 팝가수들의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를 벤치마킹 했다던데, 그 노래를 백악관이 나서서 제작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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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이 이런 노래 억지로 만들어주지 않아도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충분히 나라를 사랑하고 있다. 소고기 협상 다시 하라며 수개월 동안 촛불을 들고 거리에 나온 것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이 나라를 사랑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일이다. 젊은이들이 현 정부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라 자체를 사랑하고 있지 않다고 착각하지는 말아줬으면 한다.

굳이 욕심내서 현 정부까지 사랑하게 만들고 싶다면 촌스럽게 옛날 방식으로 계몽적 노래 만들어 보급할 생각 따위 하지 말고 청년실업 문제부터 시급히 해결해야 할 것이다. 물론 청년들 손에 삽 한 자루씩 쥐어주고 대운하 공사판에 내보내는 새마을 운동 방식은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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