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깊이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생각은 신념이다. 이런 신념들이 다른 사람들과 서로 공유되고 확인되면서 형성되는 것이 바로 여론이다. 그리고 여론조사란 이런 여론의 구도와 추세를 파악하는 과정이라 하겠다. 이번 대선에서 여론조사는 늘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었다. 언론은 매일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며 대선 향방을 점치기에 바빴고, 정치권도 여론조사 결과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일희일비를 거듭했다. 유권자들 역시 스스로가 만들어낸 여론조사 지지율 그래프의 등락을 보며 급변하는 민심의 흐름을 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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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에서 여론조사의 영향력이 커지자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일단 여론조사의 정확성 문제이다. 여론조사들마다 결과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1위와 2위 후보 간 격차가 크게는 6% 이상 차이를 보이기도 했고, 후보 간 지지율 순위가 뒤바뀐 조사 결과가 같은 날 발표되어 유권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도하는 언론에 더 책임이 크다. 어떤 여론조사든 정확한 결과를 콕 집어낼 수는 없기에 반드시 오차범위라는 것을 명시한다. 오차범위 이내의 격차는 사실상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는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은 소수점 수치까지 따지며 굳이 우열과 순위를 갈라 보도한다. 정작 문제는 이런 언론의 경마식 보도에 있는 것이지 여론조사 그 자체에 있다고 볼 수 없다.

또 다른 지적은 여론조사가 미칠 영향력에 대한 우려이다. 여론조사 결과는 이후 여론의 향방에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행위자 역할을 수행하기 마련이다. 밴드웨건 효과와 언더독 효과가 그것이다. 밴드왜건은 다수의 여론에 편승하는 사람들의 심리이며, 언더독은 반대로 약자에게 쏠리는 관심을 말한다. 어느 쪽이 됐건 여론조사 결과가 유권자들의 표심을 한쪽으로 몰리게 만들어 여론의 왜곡 현상을 초래한다는 비판이다. 선거법에서 D-6일부터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조항을 두고 있는 것도 이런 점을 의식한 결과이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가 이후의 여론 동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문제점라고 보기 어렵다. 앞서 이야기했듯 여론이란 나의 신념과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서로 공유되고 확인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수의 여론 지형 속에서 자신의 신념을 더욱 공고히 하거나 혹은 신념을 바꾸는 과정은 지극히 정상적인 여론 형성 과정일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현행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조항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D-6일 이후부터 이뤄지는 최신 여론조사 결과는 정치권과 언론사가 독점하고 있는 반면 정작 주권을 행사하는 유권자들은 예전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받아 표심을 행사한다. 참으로 부조리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투표일이 임박할수록 돌발 변수들이 튀어나와 여론 구도가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여론조사 결과 공표 금지 조항이야말로 오히려 여론을 왜곡시킬 위험이 크다.

선거 기간 중에는 다른 어느 때보다 국민의 알 권리가 한층 더 보장되어야 한다. 후보자 정보나 정책에 대한 알 권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바로 여론 동향에 대한 알 권리이다. 지금 여론조사 말고 이를 온전히 충족시켜주는 다른 유용한 수단이 과연 또 어디 있을까?

(한겨레신문, 2012.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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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후보가 새 정치의 청사진을 밝혔다. 민주통합당을 뛰어 넘는 국민 정당의 창당 가능성 시사와 함께 주목할 것은 당선 후 국정 운영에 대한 구상이다. 인수위 단계부터 대통합 내각을 구성해 ‘시민의 정부’를 출범시키겠다는 것이 그 골자이다. 문재인 후보의 발표 직후 새누리당에서도 맞불 카드를 내놨다. 대통령 직속의 ‘국정쇄신 정책회의’를 설치하여 야권 후보의 공약까지 수렴한 정치 쇄신의 콘트롤 타워를 운영하겠다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대통령을 의장으로 하여 행정 각부 장관과 국무총리실장,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이 참여하며, 각계의 전문가와 시민 대표들까지 포함시키겠다고 한다. 그리고 이 중 1/3 이상은 야당 추천 인사로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문재인 후보의 청사진이 포괄적인 방향을 제시한 차원이라면 박근혜 후보의 청사진은 보다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위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문재인 후보의 청사진에는 앞으로 얼마든지 다양한 정치적 상상력을 그려 넣을 여지가 많은 반면, 박근혜 후보의 청사진은 이미 모든 것이 완결된 닫힌 구조를 띤다. 게다가 정치적 상상력조차 빈곤하고 진부하기 짝이 없다.

일단 별도의 회의체를 구성하겠다는 발상은 어떤 사업이 생기면 제일 먼저 전담 기구부터 꾸렸던 과거의 행정 관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게다가 그 전담 기구조차도 몇몇 전문가와 시민 대표가 추가된 기존 국무회의의 확대에 불과하다. 야당 추천 인사 1/3도 그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등에서 경험했듯이 영향력 없는 구색 갖추기 식의 소수 집단에 머무를 가능성이 크다. 한 마디로 ‘국정쇄신 정책회의’ 구성안 자체에서 이미 쇄신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식으로 하면 얼마 못가 ‘국정쇄신 정책회의’를 쇄신하기 위한 또 다른 회의체를 만들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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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문재인 후보의 청사진에는 앞으로 어떤 정치적 상상력을 그려 넣을 수 있을까? 아마도 대통합 내각과 시민의 정부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국정 운영 원리를 찾는 일이 그 첫 번째 작업이 될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대통합 내각과 시민의 정부 주체 세력이 기존 지역과 계층, 이념을 달리하는 여러 정치 세력의 연합으로만 그쳐서는 안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새로운 정치를 열망하는 일반 시민들의 광범위한 참여가 제도화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만 비로소 대통합 내각과 시민의 정부가 온전히 완성될 것이다. 즉 거버넌스의 구축이 관건이라 하겠다.

물론 거버넌스 그 자체가 새로운 개념은 아니다. 심지어 전문가와 시민 대표를 참여시키겠다는 박근혜 후보측의 ‘국정쇄신 정책회의’ 안에도 거버넌스의 이념은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새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열망은 단지 선발된 몇몇 사람들이 폐쇄적 회의체에 참여하는 정도의 제한적 거버넌스만으로는 충족할 수 없을 만큼 증폭되어 있다. 또한 다양한 온라인 채널들을 통해 보다 광범위한 거버넌스를 구현할 수 있는 수단도 충분히 마련되어 있다. 따라서 새로운 정부, 새로운 정치에는 이에 걸맞는 새로운 거버넌스가 요청된다. 이것을 나는 ‘소셜 거버넌스’(Social Governance)라 정의한다.

소셜 거버넌스 이전에도 온라인을 통한 거버넌스는 존재했다. 학계에서는 흔히 ‘e-거버넌스’라는 개념이 널리 통용되었다. 정부 차원에서도 그간 e-거버넌스를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다. 대표적으로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국민참여수석실을 통한 온라인 국민제안 시스템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참여정부의 거의 모든 것을 단절시킨 이명박 정부에서도 인터넷 국민신문고 같은 제도는 여전히 계승되고 있다.

하지만 소셜 거버넌스는 이런 e-거버넌스와도 구별되는 개념이다. e-거버넌스가 시민 개개인을 참여 단위로 간주하였다면, 소셜 거버넌스는 네트워크로 연결된 다양한 시민 집단을 참여 단위로 설정하는 개념이다. 또한 e-거버넌스가 시민들의 역할을 정책 소비자 혹은 정책 제안자로 한정시켰다면, 소셜 거버넌스는 정책의 제안 및 논의 뿐 아니라 의사결정 단위에까지도 시민들의 진입을 보장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소셜 거버넌스는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된 시민들이 정책 과정에 집단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보장하는 보다 적극적인 개념이라 정의할 수 있다.

국정 운영에서 소셜 거버넌스가 구현되기 위해서는 시민, 전문가, 관료 등이 함께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플랫폼이 채택되어야 한다. 이는 당장은 페이스북과 같은 기존 SNS를 활용할 수 있으며, 중장기적인 전망 하에서는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국정 소셜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플랫폼을 채택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도화의 문제이다. 즉 소셜 거버넌스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어떤 지위와 역할을 부여할 것인가, 소셜 플랫폼 안에서 이뤄지는 행위들을 어떤 프로세스로 구조화 할 것인가 그리고 여기에서의 의사결정에 어느 수준까지의 법적 권한을 허용할 것인가 등의 문제이다. 또한 수많은 정책 의제들을 수많은 참여 인원들이 한 공간 안에서 뒤섞어 다룰 수는 없기 때문에 어떤 기준으로 정책 의제들을 나누어 개별적인 소셜 거버넌스 체제를 작동시킬 것인가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물론 이런 숙제들을 지금 당장 다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소셜 거버넌스의 운영을 위해서는 보다 상세하고 심도 깊은 연구가 선행되어야 마땅하다. 따라서 일단은 대선 이후 인수위 단계에서부터 차기 정부의 주요 국정 과제 중 몇 가지를 선별하여 실험적으로 소셜 거버넌스 체제를 운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난 참여정부의 출범 당시에도 인수위에서 온라인 국민제안을 실험적으로 운영하다가 청와대에서 전담 수석비서관실을 설치하여 이를 본격화했던 선례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곧 구성될 인수위에서도 소셜 거버넌스 전담팀을 구성하여 구체적인 구현 모델을 연구하고 이를 몇 가지 정책 의제에 실험적으로 적용해보는 과정은 얼마든지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새 정부가 출범하면 이를 단계별로 주요 국정 과제들에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정권 교체와 정치 교체는 이번 대선의 가장 중요한 역사적 과제이다. 민주당이 승리하면 정권 교체야 이뤄지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치 교체까지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정치 교체를 위해서는 낡은 구태 정치의 청산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정치의 실질적인 모델 구축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그저 공허한 신기루에 그칠 뿐이다. 소셜 거버넌스야말로 새로운 정치의 해답이다. 또한 문재인 후보가 천명한 시민의 정부가 그저 구호뿐인 시민의 정부, 형식적인 시민의 정부가 아닌 명실상부한 시민의 정부가 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광범위한 정책 참여를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관건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소셜 거버넌스이다.

(오마이뉴스, 2012.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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